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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사 속의 호국사상과 선무도의 밀접한 관계

불교의 전래 및 선무도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삼국시대로써,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372),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 신라는 제 19대 눌지왕(417~458) 때 고구려를 통해 육로를 따라 전래되었다는 설과 또한 가야의 불교 유래설과 같이 신라와 백제시대 뱃길을 따라 전래된 것입니다.

 

특히 골굴사와 인근의 기림사는 인도에서 광유성인 일행이 창건하였으며, 광유성인은 오늘날의 미얀마 지역(옛 인도)의 전설 속에 전해지는 큰 스님 중의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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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에 끼친 선무도의 사상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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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배양한 불교의 호국사상은 근본불교의 실천 수행법인 선무도의 수련이 그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교의 사상과 수행법이 동인(動因)이 되어 호국 불교의 근간이 된 화랑도 정신은 세속오계로 유명한 원광법사로 부터 그 뿌리를 내립니다.

 

신라는 진평왕 대에 이르러 화랑도 운동이 크게 일어났으며, 화랑 집단은 3년 동안의 수련 기간을 통해 주로 경주 인근의 남산과 함월산, 금강산, 지리산 등 명산을 찾아 자연과 접하며 국토에 대한 애착심과 호연지기를 익히고 교양과 무예를 수련하였으니 사찰이 곧 그 역할을 한 수도장이며, 승려들이 오늘날의 교관과 같은 임무를 수행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함월산, 기림사는 화랑도들의 주된 수도장으로써 크게 활용되었으며 그 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승병들이 주석했던 대표적인 호국도량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화랑도는 불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고승 대덕들로부터 교학과 무술을 배우며 장래 국가에 재목으로 성장하여 훗날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삼국사기>

 

이러한 불교 호국사상의 수호를 위해 승려들 개개인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련이나 선무도에서 말하는 무술적인 동공을 평소에 연마해 왔기 때문에 유사시에 승군으로 조직되어 참전이 가능 했을 것 입니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전통의 계승이 유학을 신봉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과 조정에 의해 불교가 탄압받는 상황 속에서도 조선 말 갑오개혁(1894)으로 승군제도가 폐지 될 때까지 이루어져 왔습니다. 역사적인 불교 탄압에 의해 그리고 곧이어 닥쳐온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그 명운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암울하였으며 일제의 한국 전통문화 말살이라는 정책 아래 선무도는 그 명맥을 감추고 승가의 선승들에 의해 비전되었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 양익(兩翼) 대종사(1934~2006)께서 사라져 가던 승군들의 무예와 관법수행법을 발굴하고 체계화하여 이를 승가에 전수하는 ‘불교금강영관 연수원’(부산 범어사 내)을 개원하였습니다.

 

이어 1970년대 중반 양익 대종사 문하에 입문하여 심인(心印)을 전수 받은 ‘대금강문(大金剛門)’ 문주(門主) 설 적운(寂雲) 스님께서 일반 대중 포교에 큰 서원을 세우고, 불교금강영관 수련법을 현대적 의미인 ‘선무도’로 개칭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가르침을 펼쳐 많은 수련생과 지도자를 배출하게 됩니다.

 

​지금은 선무도의 전 세계적인 포교와 전문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선무도 총본산 골굴사에 ‘선무도대학’과 ‘재단법인 선무도 대금강문’을 설립하였으며, ‘

사단법인 세계선무도총연맹’ 산하 국내외 다수의 지원, 지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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